다테가모리 아크 목장

다테가모리 아크 목장에 대하여

히스토리

“나의 사랑하는 가족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 그런 먹거리만 생산하자.그렇게 하면 우리가 만든 것을 고객에게도 자신 있게 제공할 수 있을 테니까.”

사이타마 현 후카야 시에서 양돈을 시작

“다테가모리 아크 목장”은 “일본의 농업을 젊은이들이 꿈을 품을 만한 산업으로서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다”는 한 남자의 뜨거운 열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그 열정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도 뚜렷이 계승되어 목장에서 땀 흘리는 사람들의 일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상품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창업자인 하시모토 데루오는 사이타마 현 후카야 시에서 태어났습니다.대학교에서 수의학을 전공하여 수의사 면허를 취득한 데루오는 25세 때 아버지 후미오와 함께 고향 후카야 시에 “(유) 하시모토 팜”을 창업.어미돼지 30마리의 일관 경영에서 시작하여 5년간 어미돼지 200마리의 일관 경영으로까지 사업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도쿄의 베드타운인 후카야 시에서는 양돈장 주변에 대공업 단지와 주택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좀 더 역동적인 농업을 꿈꾸던 데루오는 후카야 시에서는 더 이상 사업을 확대할 수 없다고 판단, 사이타마에서의 사업을 남동생에게 넘기고 자신은 새로운 땅에서 양돈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의합니다.

이와테에서의 새로운 도전

다양한 후보지를 돌아본 끝에 이와테 현 최남단에 위치하고 미야기 현과 맞닿아 있는 히가시이와이 군 후지사와초(지금의 이와테 현 이치노세키 시 후지사와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1975년 “(유) 하시모토 팜 이와테 목장”을 창업하여 어미돼지 300마리의 일관 경영을 시작했습니다.28세에 끊은 새로운 스타트였습니다.
사이타마에서 이와테로 이주한 데루오는 우선 지역민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마을 회합 등에 적극적으로 참가했습니다.사람 대 사람의 교류나 만남을 중요시했던 데루오는 대담하고 사교적인 성격으로 서서히 지역민들과 친해졌고 양돈업의 동료도 늘려 나갔습니다.

21세기 농업의 이상적인 형태

이후 양돈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10년간 어미돼지 1,000마리의 일관 경영으로까지 규모를 확대하는 등 열정적으로 꿈을 좇았습니다.이렇게 돼지 사육과 돼지고기 생산에 전념하던 데루오, 그리고 그의 파트너이자 아내였던 시즈의 마음에는 한 가지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그것은 지금의 “다테가모리 아크 목장”의 이념인 “음식은 생명”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에게 안심하고 먹일 수 있는,그런 먹거리만 생산하자.그렇게 하면 우리가 만든 것을 고객에게도 자신 있게 제공할 수 있을 테니까.”
데루오와 시즈는 늘 이러한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독일인 기술자에게 배운 본고장의 맛

처음에 시도한 것은 직접 생산한 돼지고기를 사용한 수제 햄과 소시지 제조 사업이었습니다.1985년의 일이었습니다.저희가 직접 사육한 맛있는 돼지고기를 더 맛있는 식품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맛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돼지고기 가공은 지식이 전무한 분야. 따라서 먼저 제조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근처에서 햄을 제조 및 판매하는 가게에 부탁하여 제조 기술의 기본을 배우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이듬해인 1986년에는 “수제 (유) 다테가모리 햄 공방”을 설립하고 햄과 소시지의 본고장 독일에서 설비를 도입.또한 당사에서 제조를 시작하기에 앞서, 독일에서 햄과 소시지 제조의 기술자인 위르겐 슈미트 씨를 초빙하여 제조 기술의 기본을 철저하게 습득했습니다.
“멀리 알프스와 닮은 오우 산맥을 바라보는 다테가모리의 자연은 뮌헨 교외 지역의 풍경과 무척 닮아 있었습니다.매우 성실하고 열심 있는 태도로 배우는 젊은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기라면 분명히 좋은 햄과 소시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슈미트 씨)
“자연이나 전통적인 기법을 중시한, 첨가물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데루오의 희망에 부응하고자 슈미트 씨와 젊은 직원들은 온 힘을 다해 매달렸습니다.그러다 보니 타협을 허용하지 않는 슈미트 씨와 의욕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려고 하는 직원들 사이에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공통된 마음과 강한 유대감이 싹트게 되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교류의 장을 조성

양돈과 수제 햄 및 소시지 제조가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무렵, 후지사와초에서 국영 농지 개발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그 중 100ha의 농지가 맡겨지면서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경종 농업을 시작.여러 농업 선진국을 시찰한 결과 영국의 파머스 마켓에서 힌트를 얻어 팜 마켓을 구상하게 됩니다.
팜 마켓의 구상은, 생산에만 머물러 있던 농장을 소비자가 직접 방문하여 즐길 수 있는 장소로 꾸미겠다는 생각입니다.갓 낳은 달걀, 갓 수확한 채소를 그 자리에서 맛보는 것에 더해 “현장을 배우고” “농장에서 놀고” “직접 만져서 체험하고” “갓 만들어진 상품을 구입하는” 다양한 즐거움 속에서 농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는 시설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교류의 장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햄과 소시지의 제조 때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끊임없는 시행착오가 거듭되었지만 서서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테가모리 아크 목장”이라고 명명된 꿈의 팜 마켓 프로젝트가 실현을 향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그리고 21세기의 농업 및 농촌의 바람직한 형태를 “생산하는 농업, 판매하는 농업, 보여주는 농업, 즐기는 농업으로 만드는 것”으로 정의하고, 꿈의 목장을 조성하는 일에 매진하게 됩니다.

팜 마켓 구상의 구현

1992년 “다테가모리 아크 목장”이 오픈.사슴과 닭이 자유롭게 방목되는 목장, 목장에서 생산된 돼지고기와 채소를 사용한 맛있는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허브 가든, 목장에서 생산된 모든 상품과 현지 후지사와초의 특산품이 한자리에 모인 팜 마켓이 있어 방문객들은 목장 안에서 각자 구미에 맛는 체험이 가능합니다.또한 “21세기까지 21만 그루의 꽃나무를 심어 꽃이 가득한 목장으로 만들자”는 소망을 담아 심겨진 꽃나무와 꽃밭을 감상하면서 산책하거나 조랑말, 토끼, 양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광장도 조성되면서,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팜 마켓이 실제적인 형태를 갖춰 나갔습니다.
2001년, 창업자인 데루오는 뜻을 이루던 중 병으로 쓰러져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됩니다.하지만 그의 유지는 목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분명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다테가모리 아크 목장은 그저 효율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고 정직한 생산을 통해 많은 고객들의 신뢰를 얻어 왔습니다.그 신뢰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 창업자가 남긴 “음식은 생명”이라는 이념을 오늘도 관철하고 있습니다.

  • 고향 사이타마 현 후카야 시에서 아버지와 함께“하시모토 팜”을 창업.모든 것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왼쪽 끝이 하시모토 데루오)
  • 대규모 양돈업을 목표로 데루오는 사이타마에서 이와테로 이주 “수제 (유) 다테가모리 햄 공방”을 세워 본격적인 햄과 소시지의 제조 및 판매를 시작.작은 레스토랑과 직매 코너를 병설
  • 지금의 “다테가모리 아크 목장”.100ha의 광대한 땅에 자리 잡고 있는 다양한 시설
  • 100종류 이상의 허브가 재배되고 있는 “허브 가든”
  • 목장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사용한 맛있는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 틸스”
  • 목장에서 생산된 모든 상품과 후지사와초의 특산품이 한자리에

“아크”의 의미

아크는 히브리어로 “방주”를 뜻합니다.구약 성서의 “창세기”에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크는 바로 그 방주를 가리킵니다.
하느님의 명령으로 거대한 방주를 만들고 모든 식물의 씨앗과 암수 한 쌍의 동물들을 태워 새로운 땅에 표착, 자손을 구한 노아.그 노아의 방주에 “일본의 농업을 미래에 물려주자”는 이 목장의 사명을 빗대어 “아크”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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